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역화폐만으로 일주일을 살아야 한다면 과연 가능할까?’
평소에도 지역화폐를 간간이 쓰긴 했지만,
전체 생활비를 맡긴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실험해보기로 했다.
규칙은 단순했다.
- 지갑 속 지역화폐 카드만 사용
- 앱은 보조로만 사용
- 신용카드, 현금은 일절 사용 금지
- 일상 그대로 유지 (출근, 장보기, 외식 등)
딱 7일간 이 규칙을 지키며 생활했더니
예상보다 다양한 문제가 드러났고,
동시에 지역화폐의 실제 효용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그 기록이다.
지역화폐로 ‘살아본’ 기록이지, 단순히 ‘써본’ 후기가 아니다.
1일차 – 의외로 부드러운 출발
첫날은 어렵지 않았다.
아침엔 동네 베이커리에서 아메리카노를 사고,
저녁엔 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모두 지역화폐 카드가 잘 통했다.
단, 대형 체인 매장은 안 되는 곳이 많았다.
생각보다 ‘지역’ 중심 매장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 첫 관찰 포인트였다.
2일차 – 교통에서 첫 한계가 등장
출근길에 지하철을 탔는데,
지역화폐로는 결제할 수 없다는 걸 그제야 체감했다.
버스는 가능했지만, 지하철은 수도권 교통카드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
그날 오후엔 급히 택시를 타야 했는데
앱에서 호출한 차량 중 지역화폐 연동된 택시는 1대뿐이었다.
이날 이후, 교통비는 지역화폐만으로는 커버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다.
3일차 – 외식 실패와 음식 배달 문제
점심은 근처 국밥집에서 해결했지만,
저녁엔 친구와 가려던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지역화폐를 받지 않았다.
대체할 수 있는 가게를 찾느라 15분 넘게 돌아다녔고,
결국 지자체 가맹점 리스트에 있던 작은 돈가스집에 들어가 해결했다.
당시 느꼈던 건, 자유로운 외식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특히 약속이 있는 날에는
지역화폐가 되냐 안 되냐에 따라 선택지가 너무 좁아졌다.
배달앱도 마찬가지였다.
결제창까지 갔다가, 지역화폐가 등록된 카드가 인식되지 않아 결국 취소한 사례가 있었다.
지역화폐만으로 생활할 땐 즉흥적인 소비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날 강하게 느꼈다.
4일차 – 모바일 결제와 앱 오류
동네 포장마차에서 QR 결제를 하려다 앱이 멈췄다.
인터넷 연결 문제였는지 앱 자체 오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제에 5분 이상 지연이 생겼고,
그 상황에서 상인도 난처해하는 분위기였다.
카드형만 쓸 땐 이런 상황은 없었는데,
모바일형은 인터넷 의존도가 높아
불안정한 환경에선 비효율적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5일차 – 생필품 구매엔 탁월한 도구
편의점에서 2천 원짜리 우유,
마트에서 휴지를 사면서 남은 잔액으로 소비를 조절했다.
잔액이 줄어드는 걸 실시간으로 보면서 계획 소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또한, 내가 자주 가는 마트에서는
물건마다 가격 비교를 하며 최대한 ‘예산 내에서’ 쇼핑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이전엔 그냥 사던 간식도 “이건 이번 주 예산을 넘지 않나?” 하고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제한된 예산으로만 소비해야 한다는 경험은 처음이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평소 얼마나 불필요한 지출을 하는지도 되돌아보게 됐다.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소비 감각을 되살리는 장치’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였다.
6일차 – 전통시장에선 진가를 발휘
근처 전통시장에 가봤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가게에서 지역화폐 결제가 가능했다.
생선가게, 야채가게, 분식집, 반찬가게 등 대부분 상점에 지역화폐 카드 단말기나 모바일 QR 결제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특히 반찬가게에서는 내가 지역화폐를 꺼내자
“요즘 젊은 분들도 이거 많이 써요, 좋아요”라고 하며
소소한 덤(깍두기)을 챙겨주셨다.
그 짧은 대화 하나에
지역과 소비자가 연결되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시장 특유의 따뜻함과 지역화폐의 결합은
금전적인 할인 이상의 정서적인 만족감도 크게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전통시장과 지역화폐는 궁합이 아주 좋다.
7일차 – 문화생활은 아직 사각지대
마지막 날, 영화관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티켓 구매는 물론 매점 결제도 지역화폐로는 불가했다.
카페도 프랜차이즈라 거절당했고,
결국 동네 디저트 가게에서 간단히 마무리했다.
문화·여가 소비는 지역화폐의 사각지대라는 게 분명해졌다.
지역화폐, 쓰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
마무리 - 지역화폐, 쓰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
7일간 오직 지역화폐만을 가지고 살아본 실험은
많은 것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생활비의 60~70%는 충분히 커버 가능했고,
특히 전통시장이나 동네 매장, 생필품 소비에 있어선
지역화폐가 훌륭한 결제 수단이었다.
하지만 교통, 외식, 여가, 프랜차이즈 매장에선
사용 불가로 인한 대체 소비가 어렵다는 점에서
완전 대체는 아직 현실적이지 않았다.
이 실험을 통해 느낀 건 단 하나다.
지역화폐는 ‘일부 생활비를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도구’로는 아주 유용하지만,
전체 생활을 맡기기엔 구조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
다만 이 도구를 적절히 사용하면
소비 습관과 예산 통제를 훨씬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건 분명한 수확이었다.
이번 7일간의 실험은 단순히 결제 수단을 바꾸는 실험이 아니라,
내 소비 습관과 일상의 선택 구조까지 점검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지만,
생활의 일부를 지역화폐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경제적·심리적 변화는 충분히 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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